<Deep Breathing>이라고 하는 전시의 전체적 개념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나는 많은 작업에서 자연을 소재와 대상으로 다룬다. 내 작업에서 자연에 대한 접근과 표현은 주로 자연에 대한 감응 자체, 혹은 그 감응을 맞이하는 순간적 상황의 재현과 창조, 그리하여 그러한 경험과 마주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자연을 자주 다루는 일차적 이유는 아마도 개인적 취향과 감수성이 많은 경우 자연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부터 발로하기 때문에 그러한 듯 싶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표현이 매체적으로는 영상설치 형식의 작업, 혹은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작업을 통해 시도되어 온 이유 역시 좀 더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첫 번째로 드러나는 자연, 미디어, 기술(Nature, Art, and Technology)라는 조합은 내 자신 안에서 그때그때 적합하고 흥미로운 표현으로써 직관적으로 선택되어 온 듯 하지만, 근래 드는 생각은 미술관 속에서 이러한 자연적 경험을 재현하거나 만들어내는 작업이 결국 자연적 상황에 대한 연출이며, 또한 그것이 미디어 혹은 다른 매체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자연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 즉 인공자연의 연출과 연관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인공자연의 연출 가운데 종종 자연적 우연성과 미디어적 의도성의 결합되는 부분이 자연과 미디어, 기술을 엮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실타래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 기술적 호흡, 미디어적 호흡, 자연의 호흡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에 의한 컴퓨테이션날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작품들은 그것이 코드레벨이던 혹은 전기전자적이고 기계적인 레벨이던지 간에 닫힌 폐쇄회로(closed feedback loop)에 기반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술적 상호작용은 생산단계에서 발생되는 근원적이며 존재론적 조건 때문에 종종 예술작업 내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이라할지라도 미리 계획되어있고 심지어 예측되고 예상가능한 경험, 그래서 단순한 나머지 단조로워지고 마는 경험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칫 기술적 호흡은 단조로운 호흡으로 이어진다. 한편 자연에서의 경험, 자연에서의 호흡은 대부분의 경우, 결코 인위적이지 않은 만남, 우연성 가득한 조우처럼 경험된다. 테크놀로지의 의도성과 단조로움과 대비되어 자연 속의 경험이 더욱 풍요롭고 우연적이며, 감성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대비는 그 대비 자체가 흥미로운 동시에, 또한 매우 다른 서로를 극복하여 갈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러한 접근이 미디어와 자연을 계속하여 다루게 되는 더 근원적 이유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번 『깊은 호흡』전에서는 자연에 대한 감응 자체, 혹은 그 감응을 맞이하는 순간적 상황의 재현과 창조, 그리하여 그러한 경험과 마주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 접근하는 가운데 그러한 자연과 미디어 사이의 우연과 의도적 결합에 대하여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기계적mechanic 혹은 컴퓨터 매체의 코드적 층위에서 오는 미디어적 호흡과 자연의 호흡을 호흡과 평행선 상에 겹쳐놓아 보기도하고 또한 가능하다면 일치시켜도 보고자 한다.
● 들이쉼과 내쉼
호흡은 들이쉼과 내쉼의 반복이다. 호흡은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이라 하여도,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목숨을 (육체적인 의미에서) 존속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또한 이러한 들이쉼과 내쉼의 반복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하는 세상과의 계속된 만남, 마주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들이쉼과 내쉼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조차 계속하여 세상과 쌍방향적 만남을 이어간다. 따라서 깊은 호흡, 특히 명상을 하며 가지는 심호흡은 때로는 세상에 대한 깊은 관조와 연결된다. 그러나 또 다시 명상과 관조는 정신적 참여뿐만 아니라, 신체 안팎으로 대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강한 신체성을 지니기에 체험적이다. 이번 깊은 호흡은 기계와 자연의 호흡에 대한 탐구이자 그들의 순환적 룹을 보다 확장시켜보는 호흡이 되길 기대한다. 또한 이러한 호흡이 개념적 혹은 관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감각과 참여의 차원에서도 함께 접근될 수 있길 바란다. 작업적 시도와 작업을 통한 기대.. 결국 또 다시 우연과 의도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것이리라.
● 각각의 영상들
세 개의 모니터 영상 중 가장 왼쪽의 영상은 작가가 2002년에 만든 <Breathing Area>라는 본 작업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single-channel video이다. 들이쉼과 내쉼이라는 호흡의 과정이 마주보고 잠을 이루는 두 남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호흡의 공간과 영역이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차이를 가지며, 남성의 호흡의 영역에 의해 그 영역이 방해를 받게 된 여성은 점차 자연적이고 무의식적이었던 호흡을 불편하게 느끼며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윽고 여성은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자신의 온전한 호흡의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이 싱글채널 비디오에서 숨소리에 집중한 사운드와 흑백의 색깔을 통해 질식되고 답답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세 개의 모니터 영상 중 가운데 영상은 타고 있는 촛불의 이미지이다. 이는 촛불 자체가 연소되는 것이 인간의 호흡과 같이 산소를 통한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촛불이 주는 명상적이고 추모적인 메세지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명상적인 메세지는 오른쪽 옆의 부처 이미지 영상과 함께 쌍을 이루기도 하고, 또한 흡사 목탁 소리와 같이 울리는 메트로놈 소리와도 조화를 만들어내어 효과를 주고자 하였다. 또한 추모적 메세지는 촛불 시위 등 촛불이 가지는 추모적 의미를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같은 전시에서 함께 전시된 <바다의 숨소리>라고 하는 작업에서 작가가 느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반응이며 그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묵상하고자 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가장 오른쪽 영상은 고 백남준 선생님의 <TV Buddha>의 작업을 백남준 미술관 전시장에서 스틸컷으로 찍어온 것을 이어 만든 영상이다. 원래의 <TV Buddha> 작업은 전기전자적이고 기계적인 레벨에서의 폐쇄회로(closed feedback loop)에 기반한 경험을 탁월하게 시각화시키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이미지를 거울 반영과 같이 TV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부처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반영적이며 명상적 효과를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본 영상 화면을 통해 이어지는 각각의 이미지는 백남준 선생님의 작업을 통해 작가가 이해한 개념을 최대한 시각화시키기 위한 흐름으로 편집되어졌으며, 이를 통해 본 전시를 통해 접근해 보고자 한 미디어적 호흡, 기술적 호흡, 그리고 자연의 호흡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고자 시도하였다.